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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연태 한국인 '보따리장사'거리 사라져 간다
http://chnavor.dbw.cn   2009-07-27 08:21:46
 
 
(흑룡강신문=하얼빈) = 부두와 기차역이 나란히 자리잡고있는 연태 북마로(北馬路), 한국인들이 배를 통해 최초로 연태땅을 디딘 곳이 바로 이곳 국제부두였다. 그들이 드나들면서 이 일대에는  그 무엇보다도 한국과 조선족 ‘보따리장사군’들이 점차 흥성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걸맞는 한식점과 농산물 특산품가게와 물류, 무역업체들이 따라 들어섰다.
게딱지같은 허름한 단층집들은 임대료가 싼 반면 한국보따리장사군들이 실북나들듯 찾아들어 오래된 가게들은 거개가 집 사고 부자가 되였다. 한식업종으로 1995년, 뒤미처 농산물선물쎈터를 위주로 경영하는 상사(商社)들이 입성하기 시작한것이 1996년도였다.  그후로 물류회사들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외 마트와 건강원, 직업소개소 등 서비스업체들이 진출해 지금까지 총 50~60여개로 한국동네를 형성했다. 몇년전에 설립된 연태 국제부두건물 4층에 자리잡은 연태한인교회에는 일요일이면 수백여명 한인들이 운집한다고 한다.
 
2007년 수, 륙, 공을 통한 연태 방문객이 1억명을 넘어섰다. 여기에는 국제부두가 있는 연태 공로도 빼놓을수 없다. 또 매년 설기간마다 다른 지역의 식당이나 상가들은 문 닫게 생겨도 이곳은 경제성수기를 맞아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두배, 세배 정도의 수입을 올릴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가 또 그들에게는 가장 바쁜 시기이도 했다.
전에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훼리선이 부두에 도착하면 크고작은 보따리를 메고 들어온 장사군들
과 이를 넘겨받는 도매상들로 북적이던 인천부두 제2국제터미널 앞이 지난해 금융위기 발생이
래 한산한 모습이다.    /김명환 기자
 
북적거렸던 ‘먹거리’―이제는 옛말
 
그러나 이렇게 한국인 ‘보따리장사군동네’로 흥성하던 거리가 포격을 맞은듯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새 역을 건설하고 도시화 계획에 의해 낡은 건물들을 전부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족 장사군들과 한국인 보따리장사군들은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고 게다가 한국경제위기와 국제부두 규제가 엄해지면서 한국인거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였다.
 
불과 1년여전인 2008년 구정에 필자가 직접 취재했을 때만 해도 북마로 국제부두는 그나마 너무 한적한 모습은 아니였다. 그때의 우리 민족 동네 풍경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국동네가 형성되는 곳은 언제나 ‘먹거리’가 판을 친다. 최초에 개관한 한양회관으로부터 시작해  부산집, 미미향, 민속촌, 제주도, 한집불고기, 전주회관, 돈가네 왕갈비 등 15여개가 한집 건너 들어섰었다.
 
13년전에 한식집을 경영해 오늘에 이른 부산집 임계순사장은 화룡시 팔가자 태생이였다. 그녀는 연태―부산 취항을 겨냥하고 음식가게를 오픈, 이름도 부산집으로 달아 친절을  꾀했다. 그녀의 성공비결은 싼 음식값과 친절한 봉사태도에 있었다. 임사장의 말에 따르면 금방 시작했을 때는 거의 절반 정도 남던 리윤이 지금에 와서는  20% 정도 남는다고 한다. 손님들도 더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대신 세금, 물가 등이 껑충 뛰였다는것이다. 현재 그녀는 북마로 국제부두거리가 허물어지면서 부근에 있는 뻐스역에 포장마차식의 식당을 계속해서 이어가고있다.
 
3여년전에 개업한 전주회관 사장은 오라지 않아 환갑을 바라보는 한국 여성 요리사이다. 그녀는 연태에로의 관광 두번째만에 이곳이 마음에 들어 눌러앉게 되였다. 그녀는 대구탕, 아구탕 등 탕종류 음식을 잘 만든다. 한국인들보다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데 이번 구정전에는 평소보다 두배 정도의 손님들이 찾아들어 바쁘게 보냈다고 말하며 미소짓던 그녀의 모습도 이제는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을뿐이다.
 
상사(商社) 이젠 굿바이
 
성수기시대 가장 오랜 상사 대룡상사를 시작으로 귀향회상사, 장백산상사, 연대달해상사, 부산상사, 금원상사, 한집상사 등 약재와 농수산물 장사를 하는 15여개의 가게들이 국제부두를 둘러싸고 늘어섰었다.
 
“전에는 장사가 잘 되였어요. 이젠 보따리장사도 한물 갈 때가 됐나봐요.”
 
길림에서 온 용호상사 책임자가 서운해서 말했다.
 
록용, 인삼, 고추, 깨, 굴비, 기름 등 농수산물과 특산품을 한때 귀향길에 오르면서 귀국선물로 가져가던 한국인들을 겨냥하고 부두에 우리 민족들이 경영하는 상사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었다.  한국 노가다같은 노동을 외면한 한국인들은 보따리장사에 매달리기 시작했고  이들을 상대로 한 조선족들이 판로가 문제가 되지 않자 상사를 많이 차리면서 물품들과 그 종류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었다.   많은 가게에서 적어도 50여가지 특산품들을 진렬했다. 그러나 그것도 몇년뿐, 한국인들이 겨우 배표벌이밖에 안된다고 아우성을 치게 되면서 점차 쇠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우선 연태, 부산, 군산 취항이 련이어 닻을 내렸다. 잇달아 한국측의 세관제한정책이 크게 작용했다. 동시에 한국경제가 급격히 낙하산을 탔다. 거기에 이웃한 기차역이 새로 건설되면서 부근의 낡은 건물들도 철수하게 되여 국제부두도 큰 영향을 입게 되였다.
 
인천배가 일주일에 월, 수, 금요일로 하선을 하면  수백명이 찾아올 때도 있던 가게에 손님들이 거퍼 20여명도 찾아오기 어렵다고 소개하던 어느 한국인 경영상사 사장의 말이 이 시각 떠오른다.
 
서란에서 온 보이차장사꾼은 현재는 한족들이 경쟁에 나서서 장사하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현지인이 사장인 성광상사(사장 侯文革)는 다른 가게들보다 종류수도 많고 성실하게 장사를 해 한국인들도 많이 찾고있고 시름놓고 짐을 맡기기도 했다는것이다. 성광상사에서 만난 한국인 한분은 중국에서는 뭐든지 싸니깐 관광나왔던 김에  참기름 한통 사간다고 말하던 모습도 떠오른다. 그러면서 중국것이라고 다 질이 나쁘고 가짜인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3년전에 참기름을 전문으로 한 박씨참기름가게를 낸 박병주사장은 전에는 가게가 없이 장사를 해서 잘 안되다가 지금은  월급벌이보다 더 된다고 말했었는데 가게간판을 내리게 되여서 얼마나 안타까왔을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리적인 덕을 보았던 무역 운송업체도 이제는...
 
특송이나 운송업체들도 부두를 낀 지리적인 위치를 리용해 설립되기 시작했다. 특산품장사를 하는 가게들이 무역과 운송업을 겸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따리장사군들도 장사를 하면서 운송업체를 리용하기 때문이다.  KGB 택배, 아세아무역, 인천물류, 거룡무역, 금명상사,  홍란무역 등 20여개가 있었다.
 
20여년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 9월 중국에 진출하여 중국본사를 연태에 두고 전역에 13개 지사를 설립한 KGB물류그룹 연태택배는 지난해 북마로부두에 회사를 옮겨왔다. KGB 택배는 한국 3000여개 영업소에 픽업 및 배송이 가능하며 안방에서 안방까지 바르고 빠르고 행복하게 운송한다는 경영 마인드로 환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KGB 택배도 도시철거계획에 어쩔수 없이 자리를 낼수밖에 없었다.
 
이밖에 한국 마트와 건강원과 미용원, 게임방, 직업소개소들이 생겨났었다. 이들도 10여개 정도를 차지했다. 마트들은 70~80%가 한국 식품과 소품들이라  현지인들이 적게 찾는 편이였다.
 
천해슈퍼, 일도마트, 청양마트가 있는 북마로에서 일도마트가 임대료로는 비교적 비싼 편이지만 국제부두 길어구에 자리잡은 최고위치로 장사가 가장 잘 되였었지만 역시 지금은 꿩 구어먹은 자리가 되였다.
 
보따리 상인들이 법을 어기면서 밀수하는 동안 간판이나 문패번지가 없이 하는 가게들은 더욱 많았다. 거기다가 장사군과 장사군, 가게와 가게의 경쟁으로 인한 다툼이 몸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허다했는가 하면 또 이곳에 룸살롱, 안마방 등 퇴페업소들도  들어와 시끌벅적 시야비야 사회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다 옛말이 되였다. 새 기차역을 건설하게 되면서 2008년말부터 정식 게딱지같은 단층집들도 파가이주를 면치 못하게 되였다. 따라서 국제부두정책이 엄격해지면서 보따리장사군들의 발길이 뜸해지였고 게다가 한국경제위기를 맞으면서 한국인들의 발길이 서서히 끊기면서 농산물, 특산물 가게들도 ‘밀대’를 놓게 되였다. 가물에 콩 나듯 몇개 남지 않은 식당과 마트외에는 한국인동네는 철저히 사라지게 되였다.  
/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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